전교조 지도부가 추진하는 ’명칭 변경‘과 ’조직 혁신‘은 노동조합이 지향해야 할 투쟁과 연대와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교사 부문주의 강화와 투쟁 회피는 대안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전교조의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전교조가 교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려면, ‘명칭 변경’이나 ‘교사노조와의 오른쪽으로 경쟁’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전교조의 이름과 전통에 걸맞게 연대와 투쟁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전교조인천지부 전국대의원 조수진 선생님의 SNS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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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노조는 성장, 전교조는 ‘위기’라고 한다.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2023년 서이초 투쟁 이후 교사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32%로 늘었으나 대체로 교사노조가 그 수혜를 입었다. 조직 혁신과 확대를 위한 전교조의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혁신하고 확대할 것인가’다. 그러려면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안을 내야 한다. 젊은 교사들을 포함 교사 대중의 눈에 현재 전교조는 어떤 모습일까? 뼈아프게도 ‘기득권’, ‘특권’ 이미지다. 투쟁하는 전교조는 희미해졌다. 이 문제의 원인과 책임은 평범한 조합원들이 아닌 전교조 지도부와 활동가들에게 있다. 전교조 출신 진보교육감들의 대거 당선 이후 적지 않은 전교조 활동가들이 장학사, 장학관, 보좌관 등 교육청과 교육부 등 권력의 상층부로 이동했다. 그러나 진보교육감을 활용한 위로부터의 개혁 전략은 입시경쟁 교육도, 열악한 현장에서 교육하는 교사들의 처지도 근본에서 바꾸지 못했다. 전교조의 투쟁은 부족했다. 개혁이 후퇴하자 대중들의 실망은 커졌고, 전교조는 함께 타격을 입었다.
○ ‘진보 교육감 시대에도 왜 교사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는가?’하는 물음에서 전교조는 자유로운가.
투쟁을 해야 조직이 되고, 조합원이 늘어난다. 전교조가 한때 10만 명까지 조합원이 늘었던 것은 과거에 성과급, 교원평가 등 현장 교사들 불만을 모아 강력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상층 교섭과 위로부터의 개혁에 치중하며 전교조는 투쟁을 자제했고, 결과적으로 투쟁력이 약화됐다. 젊은 교사들이 교직에 들어와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저임금(민간의 83.9%), 악성 민원,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교권 침해, 차등 성과급, 과밀학급과 과도한 행정업무다. 정년 보장이라는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불만이 높아 교직 입직은 줄고 이직은 늘었다. 교육 개혁과 교사들의 처지 개선은 근본에서 교육 재정 확충과 정규 인력 대폭 충원이 필수적인데 전교조는 이를 위한 실질적 투쟁을 이끌지 못했다. 교육청과 정부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학교 안 다양한 노동자들과 함께 싸워야 하는데 분열과 이간질에 취약했고, 단결된 연대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전교조가 투쟁과 연대를 통한 변화의 확신을 주지 못하고 현장 교사들의 신뢰를 잃는 사이 교사노조가 서이초 투쟁 등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전국 노동조합 조직률 13%에 비해 교사 조직률은 32%로 2.5배 높지만, 전교조로 수렴되지는 않았다.
투쟁을 해야 조직이 되고, 조합원이 늘어난다. 전교조가 한때 10만 명까지 조합원이 늘었던 것은 과거에 성과급, 교원평가 등 현장 교사들 불만을 모아 강력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상층 교섭과 위로부터의 개혁에 치중하며 전교조는 투쟁을 자제했고, 결과적으로 투쟁력이 약화됐다. 젊은 교사들이 교직에 들어와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저임금(민간의 83.9%), 악성 민원,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교권 침해, 차등 성과급, 과밀학급과 과도한 행정업무다. 정년 보장이라는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불만이 높아 교직 입직은 줄고 이직은 늘었다. 교육 개혁과 교사들의 처지 개선은 근본에서 교육 재정 확충과 정규 인력 대폭 충원이 필수적인데 전교조는 이를 위한 실질적 투쟁을 이끌지 못했다. 교육청과 정부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학교 안 다양한 노동자들과 함께 싸워야 하는데 분열과 이간질에 취약했고, 단결된 연대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전교조가 투쟁과 연대를 통한 변화의 확신을 주지 못하고 현장 교사들의 신뢰를 잃는 사이 교사노조가 서이초 투쟁 등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전국 노동조합 조직률 13%에 비해 교사 조직률은 32%로 2.5배 높지만, 전교조로 수렴되지는 않았다.
○ 현장 교사들은 “왜 전교조여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우선 전교조는 싸워야 하고, 효과적으로 잘 조직하고 단결해 싸워야 한다. 교육은 국가가 중요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부문으로 국가를 상대로 투쟁할 때가 많다. 교사노조처럼 정규직 교사들로만 시야가 협소해지면 자칫 다른 노동자들과 분열돼 고립되기 쉽고, 연대가 약화돼 단결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효과적인 싸움이 어렵다. 직종과 고용 형태를 뛰어넘어 공동의 사용자(교육청, 교육부, 정부)에 맞서 함께 싸우고 연대해야 결국 교사들의 이해관계도 제대로 잘 대변하고 지켜낼 수 있음을 실천에서 입증해야 한다.
우선 전교조는 싸워야 하고, 효과적으로 잘 조직하고 단결해 싸워야 한다. 교육은 국가가 중요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부문으로 국가를 상대로 투쟁할 때가 많다. 교사노조처럼 정규직 교사들로만 시야가 협소해지면 자칫 다른 노동자들과 분열돼 고립되기 쉽고, 연대가 약화돼 단결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효과적인 싸움이 어렵다. 직종과 고용 형태를 뛰어넘어 공동의 사용자(교육청, 교육부, 정부)에 맞서 함께 싸우고 연대해야 결국 교사들의 이해관계도 제대로 잘 대변하고 지켜낼 수 있음을 실천에서 입증해야 한다.
전교조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은 학생과 교사를 포함 전체 노동자들에게 이롭다. 학생들에게 입시 경쟁교육을 넘어 양질의 교육을 보장하고, 협력을 가르치고, 차별이 아닌 평등을 교육하고, 억압과 통제가 아닌 민주주의와 인권 친화적 학교 분위기를 만들고, 기후정의를 위한 생태환경 교육과 성평등 교육, 교육 복지와 교육 공공성, 노동 존중 등을 실현하려면 교육 재정과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교무실, 행정실, 급식실 등 다양한 직종의 교육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 투쟁이 사활적으로 중요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 형태를 뛰어넘는 ‘대정부 공동 투쟁’이 효과적인데 이는 교사노조가 놓치고 있는 핵심이다. 전교조는 교사노조와 달리 정규직 교사 외에도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들을 조직하는 노동조합이다. 학교 내 다양한 노동자들과 연대를 추구하며, 민주노총 소속 전체 노동자들과의 연대 속에서 더 나은 사회 건설을 지향해온 노동조합이다. 이는 교육이 사회와 동떨어진 섬이 아니고, 교실 속 수업만이 학생들의 발달에 필요한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철학과 정치를 바탕으로 추구해 온 전교조의 핵심 전략이다. 전교조 ‘조직확대와 혁신’ 방향은 비정규직 교사들과 연대를 추구하는 방향이어야 하고, 이러한 연대는 교사 직군 외에도 교육 노동자 전반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 전교조 본부가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전교조의 역사와 방향성을 버리려는 구체적 시도라는 점에서 우려스럽고, 교육노동운동에 해악적이다.
본부는 2030 청년 교사들의 가입을 유도하고 실질적인 교사 당면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명분으로 조직의 이름에서 ‘직(직원)’을 빼는 명칭 변경을 추진하려 한다. 이는 ‘교사들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겠다’는 교사노조의 방향성을 추수하는 것으로 위기의 본질을 빗나간 위험한 타협이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언 발을 녹인답시고 오줌을 누면? 효과적이기는커녕, 해악적이다. 진정한 문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름에 담긴 단결과 연대의 전통과 전략을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고 ‘교사만의’ 부문적이고 협소한 이해관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압력에 타협해 온 최근의 오류들이지, 그 이름 자체에 담긴 방향성이 아니다. 전교조의 투쟁과 연대, 단결의 전통은 버릴 것이 아니라 유지하고 재건해야 할 무기다. ‘순수 교사 이익단체’ 프레임을 내세우는 교사노조의 뒤꽁무니를 좇을 것이 아니라, 기층 교사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본연의 강력한 투쟁성과 연대를 회복해 전교조가 대체 불가능한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본부는 2030 청년 교사들의 가입을 유도하고 실질적인 교사 당면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명분으로 조직의 이름에서 ‘직(직원)’을 빼는 명칭 변경을 추진하려 한다. 이는 ‘교사들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겠다’는 교사노조의 방향성을 추수하는 것으로 위기의 본질을 빗나간 위험한 타협이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언 발을 녹인답시고 오줌을 누면? 효과적이기는커녕, 해악적이다. 진정한 문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름에 담긴 단결과 연대의 전통과 전략을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고 ‘교사만의’ 부문적이고 협소한 이해관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압력에 타협해 온 최근의 오류들이지, 그 이름 자체에 담긴 방향성이 아니다. 전교조의 투쟁과 연대, 단결의 전통은 버릴 것이 아니라 유지하고 재건해야 할 무기다. ‘순수 교사 이익단체’ 프레임을 내세우는 교사노조의 뒤꽁무니를 좇을 것이 아니라, 기층 교사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본연의 강력한 투쟁성과 연대를 회복해 전교조가 대체 불가능한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 조직 대상을 교사만으로 한정해 배타적으로 조직하는 것은 해외 교원 노동조합에서도 보기 드물다.
영국(NEU), 독일(GEW), 호주(AEU), 프랑스(FSU) 등 해외 주력 노조들은 교사만을 대변하는 협소한 형태에서 벗어나, 학교 내 급식, 보건, 행정, 돌봄 등 다양한 교육 지원 직종을 포괄하는 거대 산별노조를 추구한다. 이는 학생 교육이 학교 구성원 전체의 유기적 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전교조가 이름에서 “직”자를 빼는 것은, 스스로 울타리를 좁혀 학교 내 타 직종과의 연대를 부차화하고 분열의 길을 열어둔다. 특히, 비정규직 강사들은 고용상의 직군이 교육공무직인데 전교조가 ‘교직원’이란 명칭을 버린다면, 조직을 확대하고 혁신할 중요한 대상을 배제하고 협소해진다. 교원노조법에 따르면 “교원”만 가입 대상이고, 어차피 직원들이 가입한 노조도 아닌데 법에 맞게 조직의 이름을 바꾸는 게 뭐가 문제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약과 통제라는 쇠사슬을 끊고 길을 만들어온 전교조가 부당한 법에 투항해야 할까. 교원노조법의 한계 안에 우리 스스로를 욱여넣고 그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는가, 아니면 교사의 파업권도 보장하지 않고 여러 제약을 둔 교원노조법을 비판하며, 교사들의 노동권을 온전히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할까. 과거 박근혜 정부가 ‘해직 교사의 조합원 자격 유지’를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 딱지를 붙일 때, 들먹인 법도 교원노조법이다. 전교조는 항의하며 싸웠고 끝내 이겼다. 교원노조법에 맞게 이름을 바꾼다는 논리는, 단순한 실용주의를 넘어 교사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으려는 정부에 항의하며 투쟁해 온 전교조의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다. ‘부당한 법을 바꾸는 조직’이 아닌 ‘부당한 법에 순응하는 조직’으로 전교조가 변모해야 할까.
영국(NEU), 독일(GEW), 호주(AEU), 프랑스(FSU) 등 해외 주력 노조들은 교사만을 대변하는 협소한 형태에서 벗어나, 학교 내 급식, 보건, 행정, 돌봄 등 다양한 교육 지원 직종을 포괄하는 거대 산별노조를 추구한다. 이는 학생 교육이 학교 구성원 전체의 유기적 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전교조가 이름에서 “직”자를 빼는 것은, 스스로 울타리를 좁혀 학교 내 타 직종과의 연대를 부차화하고 분열의 길을 열어둔다. 특히, 비정규직 강사들은 고용상의 직군이 교육공무직인데 전교조가 ‘교직원’이란 명칭을 버린다면, 조직을 확대하고 혁신할 중요한 대상을 배제하고 협소해진다. 교원노조법에 따르면 “교원”만 가입 대상이고, 어차피 직원들이 가입한 노조도 아닌데 법에 맞게 조직의 이름을 바꾸는 게 뭐가 문제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약과 통제라는 쇠사슬을 끊고 길을 만들어온 전교조가 부당한 법에 투항해야 할까. 교원노조법의 한계 안에 우리 스스로를 욱여넣고 그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는가, 아니면 교사의 파업권도 보장하지 않고 여러 제약을 둔 교원노조법을 비판하며, 교사들의 노동권을 온전히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할까. 과거 박근혜 정부가 ‘해직 교사의 조합원 자격 유지’를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 딱지를 붙일 때, 들먹인 법도 교원노조법이다. 전교조는 항의하며 싸웠고 끝내 이겼다. 교원노조법에 맞게 이름을 바꾼다는 논리는, 단순한 실용주의를 넘어 교사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으려는 정부에 항의하며 투쟁해 온 전교조의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다. ‘부당한 법을 바꾸는 조직’이 아닌 ‘부당한 법에 순응하는 조직’으로 전교조가 변모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