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진보 교육감과 교육개혁: 평가와 과제

정원서(전교조 조합원)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교육감 후보와 정책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요즘 진보 교육감에 거는 기대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일각에서는 진보 교육감 무용론을 말하고, 진보 교육감과 보수 교육감이 무슨 차이가 있냐는 냉소적인 얘기까지 들린다.

2010년 이후 진보 교육감의 등장은 교육개혁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교육감 직선제 도입 이후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며 공교육 개혁과 교육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크게 높아졌다.

특히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은 교육 복지를 늘리고 경쟁교육체제에 균열을 내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2014년과 2018년 선거를 거치며 진보 교육감은 전국 다수 지역에서 당선됐고, 12년 간의 “진보 교육감 시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입시경쟁, 교육 불평등, 사교육 문제 등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가 지속됐고 학교 현장의 변화는 미미했다. 그 결과 2022년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후보가 대거 낙선을 하면서, 12년 간의 “진보 교육감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 글은 여기서 시작해 보려 한다. 어쩌다 지난 선거에서 진보가 패배하고 “진보 교육감 시대”가 끝나게 됐는지 말이다. 그 다음 이 시기 교육개혁이 왜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남긴 교훈은 무엇인지, 2022년 선거 결과가 교육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진보 교육감의 성격과 구실을 분석하고, 진보 교육감 중심의 교육개혁 전략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교육감 선거와 진보 교육감에 대해 좌파가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실질적인 교육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필자의 이전 글(〈노동자 연대〉 416호,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의 경험’)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이전에 다루지 않은 2022년 선거와 그 이후의 상황을 추가하고, 3기 진보 교육감에 대한 분석을 보강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분석과 논지가 유지되는 부분에서는 상당 부분 중복이 있음을 양해 바란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기 전에 미리 읽어 보기를 권하는데, 그 이유는 진보 교육감의 탄생, 성과, 한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글에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는 진보 교육감의 성과(의미)를 보충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진보 교육감 시대”는 어쩌다 막을 내리게 됐나?

대중적인 교육개혁의 열망에 힘입어 2010년 6명, 2014년 13명, 2018년 14명의 진보 교육감이 당선했다. 세 번의 선거를 거치는 동안 진보 교육감에 대한 지지가 지속해서 확대해 온 결과다. 그러나 2022년 선거는 이러한 흐름과 역행하는 결과를 보여 줬다. 전교조는 당시 논평에서 “진영 논리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교육감 후보들이 9명이 당선된 것은 지난 12년 진보 교육감이 이뤄 온 교육의 변화가 의미 있었기 때문이다”고 위안했지만,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평가다. “진보 교육감 시대”가 남긴 교훈을 찾으려면, 당시 선거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그 의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전교조 논평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한 광주(이정선), 전북(서거석), 전남(김대중) 등 세 곳은 성향 논란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진보라고 규정할 수 없고 중도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면 그 지역들에서 각각 정성홍, 천호성, 장석웅 등 진보 후보들이 그들과의 대결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 명은 (‘민주진보교육감’ 후보와는 달리) ‘민주혁신교육감’ 정책 연대를 별도로 구성했는데,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특권경쟁교육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진보’와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이정선, 서거석 교육감(이하 직함 생략)은 교총 출신이다.

당시 선거 결과를 진보 대 보수 구도로 요약하자면, 진보는 14곳에서 6곳(서울, 인천, 충남, 세종, 울산, 경남)으로 대폭 줄어든 반면, 보수는 3곳에서 8곳(경기, 강원, 충북, 대전, 경북, 대구, 부산, 제주)으로 크게 늘었다. 이런 결과는 (보수의 승리는 아닐지라도) 진보의 명백한 패배와 보수의 약진을 보여 주는 것이며, “진보 교육감 시대”가 멈췄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를 입증하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들을 언급해 보겠다.

첫째, 선거 전 일찍부터 지역 내에서 “진보 단일 후보”임을 내세웠던 후보들이 모두 낙선했다. 이번에는 전례 없이 보수 진영에서 단일화가 두드러졌는데, 보수 대 진보 양자 대결로 선거가 치러진 곳은 경기, 충북, 대구, 부산, 울산, 경남, 제주 등 모두 7곳이다. 여기서 울산과 경남만 진보가 승리했고, 나머지 5곳은 보수가 승리했다.

둘째, 진보 교육감이 당선한 곳에서도 지지율이 낮다. 유권자 지지율 평균값(각 지역 투표율에 당선자의 득표율을 곱한 값)이 23.0퍼센트인데 비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 6개 지역 교육감의 유권자 지지율은 평균 21.5퍼센트에 불과하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의 경우, 대부분 보수 진영 후보가 여럿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서울, 인천, 충남, 세종의 경우 보수 후보가 2명 이상 난립했으며, 2, 3위의 득표수를 합산하면 모두 당선인의 표를 상회했다.

셋째, 다수의 진보 교육감들이 현직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재선 또는 3선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10명의 진보 교육감이 재선 또는 3선에 도전했으나, 당선은 서울, 경남, 충남, 세종, 인천, 울산 등 6명에 그쳤다. 이는 2018년 선거에서 재선이나 3선에 도전한 진보 교육감 10명이 모두 당선된 것과 대비된다.

넷째, 현직 진보 교육감이 출마하지 않은 곳에서는 모두 진보가 패배했다. 가령 경기, 강원에서는 보수의 우세가 두드러졌다. 다시 말해, 진보 교육감들은 모두 현직 프리미엄의 덕을 어느 정도 봐야만 당선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다섯째, 재선에 성공한 진보 교육감의 득표율이 대부분 지난 선거에 비해 두드러지게 떨어졌다. 세종 최교진은 50.1퍼센트에서 30.83퍼센트로, 충남 김지철은 44.1퍼센트에서 33.79퍼센트로, 서울 조희연은 46.59퍼센트에서 38.09퍼센트로 득표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결과는 진보 교육감 14명을 당선시킨 2018년 선거와 비교하면 극적인 변화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진보 교육감에 대한 실망과 회의가 대거 투표로 표현된 결과라는 점이다. 그럼, 왜 진보 교육감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실망으로 변했을까?

물론 윤석열 취임 후 한 달 만에 치러진 선거에서 보수 우세 분위기가 형성됐고, 보수 후보들이 전례 없이 단일화에 열을 올린 것도 한몫 했다. 그러나 핵심 원인은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 동안 누적된 실망이다. 진보 교육감을 뽑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교육의 고통을 완화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2년간 교육 현실이 바뀌지 않았고 사교육의 증대, 교육 불평등 증대 등 상황이 더 악화했다. 청소년의 우울과 자살이 증가했고, 교사들도 처지가 더 나빠졌다. 서이초 투쟁에서 진보 교육감은 야유와 비난의 대상이었다. ‘내로남불

정권’ 심판 분위기 속에서 문재인 정부와 코드 맞추기를 한 후과도 있었을 것이다.

둘째, 후보자 공약이 수렴하면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흐릿해졌다.“후보의 이름을 가리고 선거 공보를 본다면 그것이 진보 성향 후보의 공약인지, 보수 성향 후보의 공약인지를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양희준 외, 2022)이전에는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 등 진영 간 대립하는 정책이 제시됐다면,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는 후보자 간 명확한 차이를 보이는 정책이 형성되지 않았다. 혁신교육을 공약으로 내건 진보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보수 또는 진보 성향 후보자 모두 ‘미래’ 또는 ‘미래 교육’을 강조했다. 외견상 그저 ‘진영 대결’만 있을 뿐, 정책이나 공약 등 내용 차이는 부각되지 않았다.

그나마 쟁점이 된 이슈가 ‘학력’(학력 저하 논란)이었는데, 진보 후보들은 이를 혁신교육의 견지에서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미래교육’으로 회피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런데 미래 교육을 내세우는 혁신교육이 더 이상 뚜렷한 대안적 전망으로 인식되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 이후 학습결손과 기초학력 문제가 부각되자 보수는 이를 ‘진보 교육감 시대의 실패’로 공격했고, 진보는 그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돌파하지 못했다. ‘기초 학력’이냐 ‘학력 신장’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학력’을 중요시한 건 매한가지다.

셋째, 교육운동 자체의 약화와 제도 정치 의존이라는 문제가 있다. 진보 교육감의 당선은 신자유주의 교육에 대한 반감과 전교조의 참교육 실천과 투쟁 등이 결합된 결과였다. 또한 2008년 촛불항쟁, 세월호 이후의 항의 정서, 박근혜 퇴진 촛불 등 사회운동의 활성화와 그 여파로 사회적 여론이 왼쪽으로 얼마간 이동한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하에서 개혁주의가 부상하면서 민주노총을 위시한 진보·좌파는 정부에 맞서는 대중적인 투쟁을 자제해 왔고, 교육운동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정리하자면, “진보 교육감 시대”에 누적된 혁신교육에 대한 실망,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과 코드 맞추기, 교육 불평등과 입시경쟁 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꾸지 못한 한계, 그리고 교육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약화 등 여러 요인들이 결합됐다. 2022년 교육감 선거 결과는 단순히 정권 교체의 영향뿐 아니라, 진보 교육감 체제의 내적 한계가 정치적 변화와 맞물려 표출된 사건이다.

후퇴와 배신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은 교육감 당선자와 득표율이 증가하면서 진보 교육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늘었지만, 한편 진보 교육감이 점차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그 결과 진보 교육감에 대한 실망이 커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시기별 특징을 간략히 묘사하자면, 1기(2010~2014)는 개혁과 후퇴를 병행하는 오락가락 개혁주의, 2기(2014~2018)는 우파의 압력에 적응하는 온건한 개혁주의, 3기(2018~2022)는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주류화된 개혁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글에서 1, 2기에 대해서는 간략히 언급만 하고 후퇴가 가장 두드러진 3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1, 2기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필자의 지난 글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의 경험’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돌이켜 보면 1기는 그나마 진보 교육감이 성과와 패기를 보여 준 시기인데,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도 대부분 1기의 성과다. 1기 진보 교육감들은 이명박 정부의 경쟁교육 드라이브에 나름 저항 기세를 보여 주기도 했다. 물론 그 충돌은 대개 부분적이고 불균등했고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도 단위 학업성취도평가 폐지, 일제고사에서 학생 선택권 인정, (정부의 교원평가 강제에 맞선) 자율적 교원평가 도입, 자사고 지정 취소 등 그 이후에는 찾아보기 힘든 도전들이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선거로 등장한 2기 진보 교육감 당선인들은 당선 직후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몸을 낮추고, 우파의 불만을 달래며,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겠다고 선언했다. 13곳 당선이라는 압도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진보 교육감들은 오히려 1기보다 더 소심하게 굴었다. 진보 교육감에 거는 기대는 커졌지만, 그들은 더 온건해졌고 개혁의 범위를 스스로 축소하는 자기 제한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반고 전성시대’(자사고 폐지)를 제 1공약으로 내세웠던 조희연 교육감은 취임 직후 자발적 전환과 유예로 선회했고 오락가락, 우물쭈물 대다가 자사고와의 대결에서 완패했다. 심지어 입시 비리가 불거졌던 영훈국제중도 살려줬다. 진보 교육감들은 선거 전 공동 기자회견문을 통해 “잘못된 정부에 복종하는 교육감이 아니라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교육감이 되겠다”고 선언해 놓고는, 교육부의 부당한 명령에 백기투항해 전교조 미복귀 전임자를 해고했고 일부 교육감은 단협마저 해지해 버렸다.

2018년 교육감 선거에서는 기존 13개 지역에서 울산이 추가되면서 총 14개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도 2014년 8명에서 2018년 10명으로 늘었다. 진보 교육의 지속과 확산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이 표출된 결과였다. 대구, 경북, 대전 3곳을 제외한 대다수 학교가 진보 교육감의 영향력 아래에 놓였으니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1, 2기 진보 교육감들이 우파 정부 하에서 활동했던 것과 달리 3기 때는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등장한 민주당 정부라는 점이 중요한 정치적 환경이었다. 교육운동진영은 교육부와 14개 시도교육청이 힘을 모은다면 어떤 개혁도 가능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 버렸다. 2021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 이행률이 9.3퍼센트라고 발표하며 낙제점을 줬다. 일각에서는 “교육개혁의 실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는 교육 적폐를 온존하는 데다가 경쟁교육을 강화하는 정책들을 버젓이 추가했다.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외면, 전교조 법외노조 지속, 수능절대평가 전환이 아니라 정시 확대, 자사고·외고 폐지를 차기 정부로 미루기, 교육 불평등 심화시키는 고졸취업 활성화 대책, 교원평가와 차등 성과급 유지, 교원정원 감축 등. 그러나 진보 교육감들은 이따금 형식적인 비판 성명만 낼 뿐, 잘못된 정책에 진지하게 도전하지 않았다.

우파 정부와의 충돌 속에서 소극적으로나마 방패 구실을 하던 진보 교육감들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오히려 국가정책과 코드를 맞추며 더 깊이 제도화·주류화됐다. 다시 말해, 그들이 제도권의 한 축으로 성장하면서 기존의 경쟁교육 시스템에 도전하기보다는 그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첫째 사례는 ‘작은 학교 통폐합’ 문제다. 당선 전 ‘작은 학교 살리기’를 약속했던 장석웅 전남교육감은 2021년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정책을 통해 초·중 통폐합을 추진했고, 이를 교육력 향상을 위한 대응으로 합리화했다. 민병희 강원교육감도 교육부의 일방적 통폐합 기준에 반대하고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분교장 통폐합과 통합학교 재편을 추진했다.

이러한 후퇴는 개별 교육감의 변심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지속·강화된 국가 차원의 소규모 학교 재편 정책과 맞물려 있었다. 실제로 여영국 의원(정의당)이 교육부 제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7~2019년 3년간 학교 통폐합은 2013~2016년보다 36.4퍼센트 증가했고, 중학교 통폐합은 148.6퍼센트 증가했다. 이는 3기 진보 교육감 시기가 ‘적정 규모 학교 육성’이라는 이름 아래 통폐합이 더 제도화·가속화된 시기였음을 보여 준다. 막상 진보 교육감들이 집권한 후에는 당선 전 약속과는 달리 학생의 교육권보다 재정과 행정의 효율성을 우선한 결과다.

둘째 사례는 자사고와 특목고 문제다. 2019년 자사고 재지정 평가 대상 중 진보 교육감의 권한 아래 놓인 자사고는 22곳이었지만, 이 중 실제로 ‘지정취소’ 처분을 받은 학교는 11곳에 불과했다. 다수 교육청이 평가 기준을 상향하고도 상당수 학교를 통과시키면서 자신들의 권한조차 다 사용하지 않았다.(사실 이마저도 교육부 부동의와 소송을 거치며 실제로 취소된 곳은 없다!) 그들은 선거 때는 자사고 폐지를 약속해 놓고는 당선 후에는 지역 여론과 정치적 부담, 법적 분쟁 가능성 등을 고려하며 적극적 폐지보다는 부분적 조정에 머무는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자사고 체제는 해체되지 않은 채 유지됐고, 진보 교육감이 약속했던 ‘경쟁교육 구조의 해체’는 공문구에 그쳤다.

특목고 문제에서도 입장 선회가 두드러졌다. 강원에서는 민병희 교육감이 학교 구성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강원외고의 특목고 지정 취소 신청을 부결시키며 “외고 역할 유지”를 선택했다. 전남에서는 장석웅 교육감이 영재교육을 비판했던 입장과 달리 에너지과학 영재학교 설립을 추진했다가 반발 속에 철회했다.

진보 교육감들은 한편으로는 혁신학교를 확대하면서 경쟁교육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자 했지만, 자사고·특목고 등 특권학교와 고교 서열화를 유지하는 모순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진보 교육감의 교육 혁신이라는 것이 입시경쟁교육 시스템 내에서 교육과정이나 수업을 혁신하는 수준에 머물게 됐다. 게다가 3기에서는 경쟁교육에 도전하는 혁신학교라는 상징성도 점점 희석됐다.

셋째 사례는 혁신교육의 후퇴(변질)다. 3기 진보 교육감 시기에는 혁신교육이 심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신교육이 ‘미래교육’으로 변형돼 나타났다. 서울의 ‘혁신미래교육’, 경기의 ‘2030 경기미래교육’과 ‘경기미래학교’, 충북의 ‘행복자치미래학교’ 등은 모두 이러한 흐름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혁신학교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미래학교라는 더 큰 틀 속에 흡수되거나 하위 개념으로 재배치됐다. 그러나 이러한 재구성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교육개혁의 중심축 자체가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기존 혁신교육이 경쟁교육 완화, 학교 민주화, 협력적 학습,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핵심 의제로 삼았다면, 3기 이후에는 핵심역량, 맞춤형 학습, 디지털 전환, 미래형 학습공간 등 ‘미래사회 적응’이 중심이 됐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교육이 자본주의적 필요에 부합되게 수행해야 하는 기능  노동력 재생산과 경쟁력 강화  이 작동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 시기 교육부는 ‘창의융합형 인재’‘지능정보사회 대응’‘미래 교육 대전환’ 등을 핵심 기조로 제시하며, 교육을 미래 산업과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재편하려 했다. 3기 진보 교육감들은 이러한 국가교육정책과 충돌하기보다, 그 언어와 방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자신의 정책으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 진보 교육감의 정책 수행은 독립적 개혁 노선으로서의 성격이 약화됐고, 국가 주도의 교육개혁 담론과 점점 더 정합성을 갖게 되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진보 교육의 확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진보 교육의 문제의식이 체제 내에서 안전하게 재편되는 과정이었다.

이런 점에서 3기 진보 교육감 시기의 변화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진보 교육이 경쟁교육을 넘어서는 공교육 혁신으로부터 멀어지고, 미래 사회에 적응하는 인재 양성 중심의 교육으로 우선회한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3기는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교육개혁의 독립성을 상실하고 국가정책과 코드를 맞추면서 주류화, 즉 “제도화된 개혁주의”로 발전한 시기다. 이 시기의 진보 교육감은 우파 정부와의 마찰 속에서 제한적으로나마 방파제 노릇을 하던 존재에서, 민주당 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를 일정하게 매개·보조하는 존재로 이동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그들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파의 압력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자본주의에서 교육이 담당하는 구실) 자체가 가하는 압력이 더 근본적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진보 교육감들이 문재인 정부처럼 분노와 환멸을 자아내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개혁이 대중의 기대에 못 미쳐 실망이 커져 온 것은 사실이다. 2018년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다수의 득표율이 상승했으나, 3선의 경우 민병희를 제외한 두 명(장휘국과 김승환)의 득표율은 재선에 비해 감소했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2022년 1월 시도교육감 직무수행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지지도가 50퍼센트가 넘는 진보 교육감은 1명뿐이고, 9명의 진보 교육감이 30퍼센트대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는 2018년 7월 같은 조사 결과와 대비되는데, 당시 50퍼센트 이상의 지지도는 4명이었고 30퍼센트대가 5명이었다. 진보 교육감 14명의 평균 지지도는 44.4퍼센트에서 39.1퍼센트로 낮아졌다. 시간을 더 거슬러서 2기(13명)에 해당하는 2014년 10월 조사를 보면 50퍼센트 이상이 5명이고, 30퍼센트 대는 3명에 불과했다. 이런 데이터는 진보 교육감의 선거 득표율과 달리 지지도가 꾸준히 감소해 왔음을 보여 주는데, 이는 진보 교육감에게 거는 기대, 즉 진보적인 교육개혁에 대한 열망은 확대돼 왔지만, 실제 진보 교육감이 보여 준 행보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늘어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진보 교육감의 개혁은 왜 초라한가?

12년 간의 진보 교육감 시대, 특히 14명의 진보 교육감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 활동했던 마지막 4년은 실질적인 교육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기회는 유실됐고, 여러 지표가 보여 주듯이 교육 현실이 전반적으로 나빠졌다. 지난 시기를 돌아보면, 진보 교육감들의 개혁은 불철저하고 일관되지 못하며 때때로 모순적이기도 했다. 말로 내세우는 원칙과 실천 사이에 적잖은 간극이 있었다. 약간의 개혁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는 타협하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사고 폐지,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 학교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입시경쟁교육 완화 등. 물론 개인 간 편차가 있지만, 진보 교육감들은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보수 교육감과의 차별성이 옅어졌다. 진보 교육감들은 왜 그리 소심하고 소극적일까? 진보 교육감이 들어섰는데도 학교 교육의 변화는 왜 그리 미미한 것일까? 그 답을 진보 교육감의 모순된 성격과 구실에서 찾아보자.

1) 자본주의 국가기구

개혁주의자들은 흔히 교육을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으로 보고, 국가기구(교육청) 내부의 개혁을 통해 교육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다 보니 진보 교육감의 개혁이 실패한 경우, 대개는 교육감 개인(의 성향이나 의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또 다른 교육감을 세우는 데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근본에서 교육청(감)은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중립적 기구가 아니라 자본 축적과 사회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계급적 장치이다. 교육 역시 단순한 지식 전달 기관이 아니라 노동력 재생산과 이데올로기 형성의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학교는 노동시장에 필요한 규율과 능력을 내면화시키고, 경쟁과 서열화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교육감은 자본주의 교육 시스템에 근본적으로 도전하기 어렵고 오히려 경쟁 교육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진보 교육감이 미래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도 미래인재 양성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자본주의 교육기구의 구실을 충실히 따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성격은 관리자 개인들의 성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유기적 기능에 달려 있다. 따라서 교육감이 바뀌었다고 자본주의 국가기구로서의 본질이 (진보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고위 관료들은 지배계급의 일원인데, 진보 교육감이 들어섰다고 하루아침에 그들의 이해관계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보수적 관료들에 포위되지 않도록 진보 교육감을 옆에서 지원해야 한다며 전교조 활동가들이 교육청으로 많이 들어갔다. 그러나 교육청의 고위 간부가 일부 교체되고 전교조 출신의 장학사들이 늘어난다고(소위 물갈이) 해도 관료 조직은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고, 교육청은 자본주의 교육제도를 유지·관리하는 구실을 지속한다.

2) 학교 노동자들의 착취를 관리하는 사용자

진보 교육감이 무기계약직 전환, 근속수당 도입 등 학교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일조하기는 했지만, 예산을 핑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조건 개선을 외면했고 심지어 투쟁을 비난하는 등 사용자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경기의 이재정 교육감은 매년 크고 작은 규모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해서 농성이 끊이지 않았다. 광주의 장휘국 교육감도 여러 차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해 노조의 거센 반발을 샀다. 전북의 김승환 교육감은 전문상담사 116명 집단해고, 부산의 김석준 교육감은 시간제 전문상담사 53명 계약해지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이는 진보 교육감들이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한 사례 중 일부일 뿐이다. 한편, 노노 갈등을 부추기거나 이를 이용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단협 체결을 지연하는 등 갈수록 사용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 제주의 이석문 교육감은 밥값과 처우 개선 수당을 직종별로 차등화해 학교 비정규직 내부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진보 교육감들도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면했다. 2018년 초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와 민주노총은 교육기관의 정규직 전환율이 전체 기준으로 사실상 2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고, 경기교육청의 경우 전환 대상이 고작 6퍼센트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진보 교육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공동공약을 내걸고도, 막상 집행 단계에서는 사용자로서 예산과 기준을 앞세워 후퇴했기 때문이다.

3기에 14명의 진보 교육감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체계 개편이나 처우 개선에 대한 공동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임금 차별, 급식노동자들의 인력 부족과 산업 재해, 강사직군의 고용 안정, 돌봄전담사의 처우 개선 등 학교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는 무시됐다. 2021년과 2022년은 지방교육재정이 크게 늘면서 재정 여력이 충분했음에도,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에 돈을 쓰는 데는 인색했다. 진보 교육감 당선에 누구보다 애를 썼고 또 기뻐했던 학교 비정규직 노조들은, 교섭과 면담 요구까지 피하는 진보 교육감에 항의하며 농성, 파업, 삭발, 단식까지 해야 했다. 이는 진보 교육감이 국가기구 내부에서 사용자로 기능하는 한 노동자와 구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사용자로서의 진보 교육감의 한계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적 위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3) 지방교육자치(교육감 권한)의 한계

교육감을 종종 ‘교육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장이다. 교육감은 막대한 예산과 인사권을 휘두르고 교육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조처를 취할 수 있는 재량이 있지만, 법적·제도적 한계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중앙정부에 권력이 집중돼 있어서, 교육감에게는 대학입시제도나 국가교육과정 등 교육을 규정하는 핵심 정책에 대한 권한이 없다. 물론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권한의 한계가 진보 교육감의 후퇴를 합리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우파 정부는 진보 교육감이 반기를 들 때마다 행정적·재정적·정치적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압박을 가한다. 또한 행정부뿐 아니라 (체제의 수호자인) 법원이 나서서 경쟁교육 시스템과 그에 이해관계가 있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해 준다.

예컨대, 전북의 김승환은 2010년 남성고·중앙고의 자율고 지정을 취소했다. 그러자 곧바로 교육부의 시정명령과 소송이 뒤따랐고 법원은 학교 측 손을 들어줬다. 또한 2019년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교육감이 지정 취소한 상산고에 대해 교육부가 ‘부동의’ 하면서 살려줬고, 나머지 자사고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모두 자사고의 손을 들어줬다.

국가적 차원의 제도 변화 없이 학교나 지역단위 개혁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혁신학교가 수천 개로 늘어났지만, 입시경쟁 체제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진보 교육감들이 제시한 ‘공교육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은 여전히 희망 속에 머물러 있다. 무상급식, 교복비 지원 등 보편적 교육복지가 조금씩 늘어나긴 했지만,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 간 교육양극화는 심화했다. 일부 지역에서 고교 평준화가 확대하긴 했으나, 특권학교와 고교 서열 체제는 굳건히 유지됐다.

파울로 프레이리가 브라질 상파울루시 교육감(1989~1991)으로서 추진한 교육개혁은 진보적 교육이 국가기구 내부에서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갖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프레이리는 노동자당 정부 출범 이후 교육행정을 담당하며 학교 운영의 민주화, 교사 중심 교육개혁, 빈민층 문해교육 확대 등 급진적 교육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개혁은 교육 참여 확대와 교사 의식 변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지만, 동시에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교육 재정의 제약, 중앙정부 중심의 교육체제, 입시 중심 구조의 유지 등으로 인해 교육체제의 근본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관료의 저항과 정치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개혁은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상당 부분 후퇴하였다. 이 사례는 교육개혁이 지방정부나 행정 권력의 의지에 의해 추진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와 교육의 재생산 기능이 유지되는 한에서 그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4) 위로부터의 점진적 개혁

진보 교육감들은 위로부터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2014년 자사고 폐지를 1년 유예하면서 “설득과 유인”을 통해 자사고를 “고사”시키는 점진적이고 부드러운 개혁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것은 개혁 목표를 향해 천천히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결국 개혁에서 멀어지는 길이었다. 진보 교육감의 동요와 후퇴는 개혁 동력인 진보 세력의 사기를 떨어뜨린 반면, 보수 세력의 자신감과 전투 의지를 고취했다. 그 결과는 자사고와의 대결에서 완패였다. 무릇 모든 개혁이 그렇듯, 자사고 폐지도 보수적 반발을 부를 것임은 자명했다. 계급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를 ‘부드럽게’ 개혁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공상적이다.

5) 좌우를 아우르는 개혁

진보 교육감들은 교육의 진보적 변화를 바라는 대중을 확실하게 대변하기보다는 좌우를 아우르는 개혁을 추진하려 한다. 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교육에는 좌도 우도 없다. 진보도 보수도 없다. 아이들만 있을 뿐.”

그러나 교육은 결코 정치 중립적일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정치적인 사회 제도 중 하나다.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교육은 늘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해 왔다. 자본주의 하의 대중교육도 마찬가지로 자본가 계급에게 이로운 이데올로기적 구실을 담당한다. 따라서 현실의 교육은 이미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해) 이념 편향적이고 (계급 격차를 반영하고 계급 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이바지하므로) 계급 차별적이다.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자사고 폐지 등 작은 개혁조차 좌우가 대립했다. 이런 현실에서 좌우를 아우르는 교육개혁이란 결국 개혁의 후퇴를 뜻하는 것이고 기존의 계급 차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진보 교육감의 성격과 구실

진보 교육감은 교육노동운동 덕분에 등장했지만 국가기구의 일부다. 다시 말해 진보 교육감은 단순한 행정 책임자나 정책 집행자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등장한 정치적 산물이다. 2010년 이후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진보적 교육운동과 사회운동의 성장, 그리고 교육 불평등과 경쟁교육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결합된 결과였다. 이러한 점에서 진보 교육감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압력과 요구를 얼마간 반영하는 존재이다.

진보 교육감(의 당선)은 대중의 교육 변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진보적 교육개혁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교육개혁을 위한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고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진보 교육감의 당선은 우리가 투쟁을 일으키는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좋은 일이다. 가령, 진보 교육감들은 ‘학교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약속했고 이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을 만들고 투쟁에 나서는 데 자신감을 줬다. “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어 준 기회를 이용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규모 노동조합 조직을 일구고 지속적으로 투쟁해서 무기계약직화, 근속수당 신설·확대 등 고용·노동조건을 개선해 왔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은 지방교육행정을 총괄하는 국가기구의 일부다. 교육감은 예산 편성, 인사권 행사, 교육정책 집행 등에서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법적·제도적 권한과 책임을 지는 행정 권력이다. 즉 기존의 교육 시스템을 유지·관리해야 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진보 교육감은 대부분 진보 출신이고 교육노동운동의 산물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전교조 위원장·지부장 출신이다. 그래서 진보 교육감들은 정치적으로나 관계 면에서나 그를 배출한 운동진영(조직)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이 아무리 진보적인 인사일지라도 당선 후에는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이자 학교 노동자들의 사용자이다. 전교조를 비롯한 운동진영이 그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시기를 돌아보면 진보 교육감은 체제 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 안에 통합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한계는 진보 교육감 개인의 정치적 의지나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위치한 국가기구의 성격과 교육체제의 구조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 개혁이 전진하려면 기층의 운동이 필수적이다.

실질적인 교육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지난 경험은 진보 교육감 당선(집권)이 자동으로 개혁을 낳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줬다. 그럼 진보 교육감 집권 하에서 실질적인 교육개혁은 어떻게 가능한가?

진보 교육감에 의존하는 위로부터의 개혁 전략은, 작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교육 불평등과 경쟁 중심 교육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는 교육개혁이 단순한 정책 변화나 제도 개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은 노동력 재생산과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에 깊이 결합해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단일 정책이나 행정 개혁을 통해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개혁은 단순한 정책 개선이 아니라, 교육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권력 구조를 변화시키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교육개혁의 핵심은 국가기구 내부의 개혁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힘에 달려 있다. 따라서 교육개혁의 과제는 진보 교육감의 당선이나 정책 추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육 주체들의 집단적 힘을 조직하고 확대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국가나 행정 권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주체들이 집단으로 벌이는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이 실질적인 교육 변화를 쟁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다. 특히 학교 노동자들의 집단적 조직과 투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투쟁은 국가정책과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바로 그 지점에서 교육개혁의 실질적 가능성이 열린다.

“진보 교육감 시대” 개혁의 성과가 미미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개혁의 진정한 동력인 (가령 전교조의)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다. 만일 강력한 대중투쟁이 있었다면 위에서 지적한 진보 교육감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쟁취할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이형빈 전 곽노현 교육감 보좌관이 진보 교육감 1기에 대해 평가한 다음 진술은 주목할 만하다. [전교조는] 진보 교육감에게 교원 평가의 방식을 바꾸라는 요구를 제기했을 뿐, 이러한 요구를 대정부 투쟁으로 이끌어 내려는 진정성을 보이지는 못했다. … 곽노현 교육감 시절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나 고교선택제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을 때도 전교조 서울지부가 이 문제를 가지고 집회를 연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으로부터 받았던 가장 큰 요구는 ‘소규모 테마형 수학여행 정책, 수행평가 확대 계획을 현장 교사들이 부담스러워하니 이를 철회하라’는 것이었지, ‘자사고와 고교선택제를 폐지하라’는 요구는 아니었다.”(이형빈, 2014) “진보 교육감 시대”에 전교조 지도부의 투쟁 자제·회피 경향이 커진 것은 물론 (국가가 아니라 지역·학교로, 교육제도나 정책이 아니라 교육청 지침으로) 시야가 매우 협소해졌음을 보여 준다.

패착

진보 교육감 중심 전략(일반으로 국가기구를 활용한 교육개혁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운동을 제도정치에 종속시키고, 아래로부터의 집단적 투쟁을 약화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 시대”를 거치면서 점점 투쟁에서 멀어져 간 점은 이를 잘 보여 준다. 교육감 직접 선거와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전교조 내에서 위로부터의 점진적 제도 변화 전략이 급속하게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전교조 지도부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는 진보 교육감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가한다는 전략이 아니라 그와 협력해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성공시킨다는 전략을 택했다.

전교조는 왜 이러한 전략에 이끌리게 됐을까? 전교조는 오랫동안 정부의 탄압을 받았고 우파의 표적이었다. 그래서 전교조의 주된 활동 무대는 학교 안과 밖(거리) 두 군데였다. 학교 안 실천(참교육 실천)과 제도 개선 투쟁 중 무엇이 우선인지는 늘 전교조를 따라다닌 논쟁이었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서 전교조 지도부는 새로운 전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대정부 투쟁이 아니라) ‘교육청(진보 교육감)을 활용해 교육을 바꾼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느닷없는 변화는 아니다.

역대 전교조 지도부는 강온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투쟁을 자기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끌었다. 쟁의권이 없어 다른 노조와 같은 방식의 산업적인 투쟁이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투쟁은 서명이나 선언이 주를 이뤘고 드문드문 연가나 조퇴 투쟁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조차 드물다. 투쟁의 효과(위력)가 떨어지다 보니 갈수록 (서명 운동을 통해) 정부에 청원하거나 (민주당을 설득해) 개혁 입법 추진에 더 매달렸다. 투쟁은 상층의 여론전이나 협상을 뒷받침하는 정도의 구실에 머물렀다. 또한 투쟁보다는 선거를 (주로는 선거에서 진보적 교육 의제 공약화라는 방식으로) 통해 교육을 바꾸려는 경향이 자랐다. 이런 속에서 (특히 전교조 출신의) 진보 교육감의 등장은 교육청을 활용해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를 제공했다. 상층 활동가들은 진보 교육감(곧 교육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실현 가능한) 정책적 대안 제시와 학교 현장에서의 실천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전교조의 “진짜 실력”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투쟁을 멀리하고 진보 교육감과의 협력(협상)에 기대는 동안 노조의 진정한 힘(조직력과 투쟁력)은 점점 약해졌다.

전교조 지도부는 진보 교육감의 후퇴에 공개적인 비판을 삼가고, 교육청으로부터 독립적인 투쟁보다는 “파트너십” 구축을 선호했다. 전교조의 상층 활동가들은 교육개혁을 위해 진보 교육감과 “전략적 협력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소통과 실천’(현 지도부 계열) 경향은 “전교조와 교육청이 조직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노조의 경영참여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교조가 교육청에 조합원을 파견”해 교육청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한편, ‘교찾사’(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경향은 교육청을 “협력과 견제”의 대상으로 묘사해 왔다. 일방적으로 협력만 강조하지는 않지만 잠재적 위험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협력과 견제를 대등하게 (같은 비중 또는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적잖은 문제를 낳는다. 실제로 다수의 지부들은 협력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협력을 위해 견제(투쟁)을 자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은 일관되게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후퇴하는 행보를 보인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은 “협력과 견제”의 대상이라기보다 아래로부터의 압박 대상이 돼야 한다.

교육개혁 성취를 위해 진보 교육감과 협력하고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협력관계 유지를 위해 비판을 삼가고 교육감과의 충돌을 피하는 쪽으로 기울기 십상이다. 사실 노동조합인 전교조가 사용자인 교육감(청)과 파트너십을 형성한다는 것은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되면 노동조합의 손발을 교육청에 묶어두어 노조의 투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진보 교육감의 후퇴는 브레이크 없이 가속할 수 있다.

진보 교육감과의 관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낳는 방식은 전교조 활동가들이 (장학사나 장학관, 보좌관, 비서 등으로) 교육청에 직접 들어가는 방식이다. 전교조 지도부는 “교육청 기구에 직접 참여해 보수적 관료들을 견제하고 진보적 교육정책을 관철”시키려는 목적으로 활동가를 “파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교육청을 바꾸러 들어간 활동가들이 오히려 자신이 바뀌게 된다. 교육청을 견인하러 파견된 사람이 역으로 노동조합을 단속하려 든다. 전교조를 대변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이 결국은 교육감을 대변하게 된다. 파견된 활동가들은 교육청 관료들에 둘러싸여 타협적이 돼야 한다는 압력을 상시적으로 받는다. 교육청에 들어가서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뜻하는 바는 노동조합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청(국가기구)을 강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교육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논리적으로도 현실에서도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노조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투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청에 활동가를 파견하는 방식은 노동조합이 선택해서는 안 되는 전술이다.

폴란드 출신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음미해보자. 다음 인용구에서 정부를 교육청으로, 사회주의자를 전교조(조합원)으로 바꿔 이해한다면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위해 어느 직책을 맡아야 한다면 그에 따르는 위험이나 어려움을 회피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러나 일반으로 정부 부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 정당에게는 활동 무대가 될 수 없다. 부르주아 정부의 성격은 정부 각료 개인들의 성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에서 그 정부가 수행하는 유기적 기능에 달려 있다. … 계급 지배가 지속되는 한 부르주아 정부는 사회주의 정부로 변모할 수 없다. 사회주의자가 부르주아 장관으로 바뀔 뿐이다. 부르주아 정부에 사회주의자가 입각하는 것은 생각과 달리 사회주의자가 부르주아 국가를 부분적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가 사회주의 당을 부분적으로 정복하는 것이다.”

지도부가 교육청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태도는 노동조합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노동자들의 조직과 무기를 사용하기보다는 교육청을 활용하려는 경향이 자랐다.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의 학교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학교 현장을 바꾸려 애쓰거나 정부의 교육정책을 변화시키려는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교육청만 바라보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학교에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전교조 분회 모임을 소집하여 대책을 만들기보다는 교육청에 있는 보좌관들이나 파견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손쉬운 해결책을 찾거나, 전교조 지부나 본부를 통해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교육청에 민원을 내는 경향도 있었다.”(이형빈, 2014)

한편, 진보 교육감의 등장은 혁신학교가 대폭 확대되는 계기가 됐는데, 혁신학교를 투쟁의 대체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자랐다. “전교조 일부 활동가들은 진보 교육감 시절 동안 대정부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혁신학교 사업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지회 집행부가 특정 혁신학교 한 곳에 몰려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형빈, 2014) 또한 노조 활동가들이 교육청 관료로 들어가는 것뿐 아니라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통해 교장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늘었다.

전교조가 투쟁을 자제하고 진보 교육감에 의존하는 경향은 결국 진보 교육감이 더 쉽게 후퇴하는 길을 열어 줬다. 조합원들은 점점 수동화되고 개혁의 후퇴로 투쟁의 사기도 떨어졌다. 투쟁력이 떨어지면서 진보 교육감의 후퇴를 막고 전진을 압박하는 힘이 더 약해져 개혁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러한 악순환의 결과, 교육개혁의 소중한 기회는 유실됐고, 전교조는 조직력과 투쟁력이 약화했다.

지도부와 활동가들의 개혁주의 경향이 커졌고 좌파들이 우경화·온건화됐다. 국가기구를 활용한 개혁 전략은 진보 교육감뿐 아니라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 교장공모제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하면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교육거버넌스(다양한 국가교육기구)에 직접 참여하기, 개혁입법을 위해 민주당에 의존하기, 실현 가능한 정책(로드맵) 제시를 위해 요구를 절충하기, 투쟁을 통한 여론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기 등.

올바른 태도

진보 교육감의 당선(집권)은 교육노동운동 진영이 실질적인 교육개혁을 이룰 투쟁을 구축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려면 근본에서 ‘진보·좌파(전교조와 진보 교육운동 단체들)가 진보 교육감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보 교육감이 우파로부터 불의한 공격을 받을 때는 방어하고, 진보 교육감이 타협하거나 후퇴할 때는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독립적인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벌여야 한다. 여기서 비판은 ‘공개적’이어야 하고, 정치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하며, 투쟁은 ‘기층의 대중 행동’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전교조는 이와 정반대로 비판은 주로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얽혀 있고, 정치적으로 의존적이었으며, 투쟁을 할 때조차도 상층의 간부 중심이지 대중적 동원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더 나은 교육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진보 교육감의 성공을 바란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은 온실 속에 있지 않다. 정부와 우파가 끊임없이 교육감을 흔들고 공격한다. 우파들은 곽노현 교육감을 사후매수죄라는 죄를 뒤집어씌워 제거했고 조희연 교육감을 찍어내려 갖은 애를 썼다. 정부는 진보 교육감이 중앙 정책에 반하는 교육개혁을 추진할 때마다 감사, 직무이행명령, 고소·고발 등으로 공격했다. 보수정당이 주도하는 도의회와 지자체가 진보 교육감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러한 정부와 우파의 반개혁적인 공격에서는 무조건 진보 교육감들을 방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교육감 공격은 단지 교육감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교육감을 배출한 진보교육운동진영과 진보교육감에 투표한 지지자 모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우파는 진보 교육감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말랑말랑 길들이려 한다. 진보 교육감들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개혁’을 말한다. 그러나 좌우를 아우르는 개혁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종종 개혁의 후퇴를 의미한다. 우리는 진보 교육감이 신자유주의 특권경쟁교육과 단호하게 결별하고 정부와 우파에 맞서 싸우라고 촉구해야 한다.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타협적이거나 실용주의적 행보를 보인다면 공개적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된다.

조합원 중에는 “진보 교육감의 성공을 곧 전교조의 성공과 동일시”하면서 진보 교육감을 비판하면 우파가 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의 잘못에 침묵한다면 오히려 대중은 진보 교육감뿐 아니라 진보교육운동진영 자체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우파가 득세하는 길을 열어 주게 될 것이다. 2022년 보수 교육감의 대거 당선이 이 점을 시사한다. 한편 진보 교육감에 대한 대중적 신뢰와 지지가 줄어들면서, 그들을 배출하고 그들에게 의존해 왔던 전교조에 대한 신뢰와 지지도 동반 추락한 듯하다. 가령 처지에 불만을 가진 많은 교사들이 최근 몇 년간 전교조가 아니라 교사노조연맹을 선택한 데는 분명 이러한 원인도 (여러 복합적인 원인과 배경과 더불어) 작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의 동요와 후퇴에 대해서 공개적 비판을 삼가지 말고 독립적인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 교육감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에서 유의할 점을 덧붙이겠다. 우리가 진보 교육감의 당선을 바라는 것과 당선 이후 국가기구의 일부가 된 교육감을 지지하는 문제는 다르다. 또한 진보 교육감을 우파적 공격으로부터 무조건 방어한다는 것이, 그의 행보와 상관없이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 교육감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맞서 싸울 때는 그를 지지하지만, 개혁 약속을 어기고 후퇴한다면 이를 비판하면서 교육감을 상대로 투쟁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진보 교육감이 진보교육운동으로부터 탄생한다고 하더라도, 당선 이후에는 국가기구인 교육청의 수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보 교육감의 행보야 어떻든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의 비정치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들과 그들의 정책은 대중 의식과 운동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따라서 선거공약을 지키도록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무엇보다 진보 교육감 당선이 열어놓은 공간을 대중투쟁과 조직을 건설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진보 교육감 시대”, 그 이후

“진보 교육감 시대”가 막을 내리고, 보수 교육감이 늘어나면서 지역 교육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곳곳에서 진보 교육 흔적 지우기나 퇴행이 벌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9월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과를 통합·폐지했고, 2023년에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 방침을 내놨으며, 2024년 교육부 예산안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전년 대비 크게 줄었다. 이러한 중앙의 방향 전환이 지방교육청과 지방의회의 보수화와 맞물리면서 지역에서 퇴행이 가속됐다.

2022년 이후의 교육 퇴행은 대체로 세 가지 패턴으로 나타났다.

첫째, 진보 교육의 상징 없애기. 혁신학교나 민주시민교육 같은 진보 교육의 표지를 바꾸거나 없애는 방식으로, 경기·부산·강원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경기에서는 2022년 8월 조직개편에서 민주시민교육과가 미래인성교육과로 바뀌었고, 2024년에는 4·16민주시민교육원 명칭이 4·16생명안전교육원으로 변경됐다. 또한 혁신학교를 ‘미래학교’로 전환하며 전임 진보 교육감 시기의 상징적인 정책을 재구성했다. 강원의 신경호 교육감 인수위는 2022년 전체 사업의 35.7퍼센트를 폐지·감축한다고 발표했고, 그 안에 강원행복더하기학교(강원형 혁신학교) 연차적 폐지가 포함됐다.

둘째, 통제·평가 강화. 성장진단평가·맞춤형 학업성취도평가·실력다짐 프로젝트처럼 학력평가와 관리 체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부산·강원·충북·제주에서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강원에서는 2023년에는 신경호표 강원학생성장진단평가를 전면 시행하면서 학력평가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에는 강원도교육청이 전교조 강원지부와의 단체협약 실효를 선언하며 노조와 정면 충돌했다. 부산교육청은 2023년부터 부산형 학업성취도평가(BEST), 학력개발원, 지역간교육격차해소추진단을 앞세워 “학력” 중심 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셋째, 의회 주도 폐지형. 국민의 힘이 다수인 지방의회가 전면에 나서는 방식으로, 서울과 충남이 대표적이었다. 충남도의회가 2024년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최종 폐지하면서, 충남교육청은 즉각 유감을 표명한 뒤 대법원에 무효 확인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서울도 시의회가 가장 공격적으로 퇴행을 밀어붙인 사례다. 서울시의회는 2024년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고, 서울시교육청은 재의를 요구한 뒤 대법원에 무효확인 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대법원은 효력 정지를 인용했지만, 시의회는 2025년 말 다시 같은 취지의 폐지안을 통과시키며 재도전을 시도했다. 이는 “보수교육감 당선”이 아니더라도, 보수 의회 다수만으로도 진보 교육을 공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울산에서도 압도적 다수인 국민의 힘 의원들이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조례를 폐지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보수 교육감으로의 성향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상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말의 뜻은 진보와 보수가 질적인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므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진보 교육감 3기에서부터 이미 혁신학교가 변질되고 미래학교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점, 진보 교육감과 문재인 정부에서도 학력을 점차 강조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질적인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단순한 정책 교체가 아니라 교육의 보수적 재편 흐름이 있다. 그것은 혁신학교·학생인권·민주시민교육 같은 진보 교육의 핵심 상징과 제도를 겨냥했고, 동시에 학력평가·인성·책임·교권 담론을 앞세워 교육을 더 통제적이고 경쟁적인 방향으로 재조정하려는 것이다. 교육운동진영은 일부 지역에서 의미 있는 저항을 만들었지만, 전반적으로 대응은 방어적이고 사후적이었다. 진보 교육의 성과를 허무는 공격이 시작될 때 이를 교육 공공성이나 평등교육 전반의 문제로 확장해 대중적으로 쟁점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또 지역별 대응으로 분산돼 전국적인 전선을 형성하지 못했고, 상층 간부 중심의 대응이나 연대체 차원에서 여론전이 대부분이었으며 현장 조직화와 대중투쟁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 간 투쟁 근육이 느슨해지고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2026년 교육감 선거 전망과 과제

교육감 선거에서 형식적으로 정당이 배제돼 있긴 하지만, 동시 선거와 정치 지형의 영향을 적잖이 받는다. 올해 교육감 선거는 2022년 선거와는 다른 정치 지형에서 치러지는 만큼 이전 시기보다는 유리한 조건에서 치러질 것이다. 윤석열 쿠데타와 그에 맞선 항의 운동의 여파로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고, 여전히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반면 우파(극우)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과 진보 교육감 세우기(후보 단일화, 선거 과정 등)에 대한 대중적 기대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진보 교육감 시대”에 경험한 실망감이 있는 데다가, 진보교육운동이 퇴보한 탓이다. 특히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던 전교조의 힘이 약화했다. 이 점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진보 교육감 세우기 전략과 인과관계가 있다.

운동이 약화되면, 진보교육운동의 산물로서의 진보 교육감의 성격 역시 약화할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 진보교육운동을 통해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한다는 정식이 흔들리는 것이다. 실제로 보수 교육감 당선을 막기 위해 진보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단일화 과정에 대한 회의적 시각(단일화 과정이 진보 교육감 후보를 세우는 올바른 과정이 맞는가 하는 의문)도 커지고 있다.

2026년 교육감 선거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단일화 여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분위기다. 이는 교육감 선거가 교육 정책이나 교육 철학의 경쟁이라기보다, 제한된 제도 내에서의 대표성 경쟁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진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도 예전보다 순탄치 않은 듯 보인다. 아무래도 진보진영의 운동과 조직이 약해진 것과 진영 내 (후보와 정책에 대한) 이견이 확대한 탓인 것 같다.

진보 진영은 시민사회운동과 교육운동 세력을 기반으로 단일화 기구를 구성하고 참여단 투표 등 민주적 절차를 통해 후보를 선출하려 했지만, 실제 과정에서는 조직 동원 경쟁과 공정성 논란, 후보 간 갈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인천과 전북에서는 단일화 자체가 실패했고, 서울과 부산 같은 지역에서는 단일화에 성공했음에도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뒤따랐다. 충북, 대전, 경남, 제주, 충남 등 여러 지역에서 단일화 작업이 지체됐다. 운동의 구심력이 약화되면서 단일화가 교육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정치적 결집이라기보다, 선거 승리를 위한 기술적 조정 과정으로서의 기능이 두드러졌다.

민선 교육감 제도가 도입된 초기에는 교육감 선거가 정당 공천이 배제된 데다 정치적 비중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면서, 전교조와 진보교육운동 단체 등 풀뿌리 교육운동 출신 후보들이 그 공간을 주도적으로 점유할 수 있었다. 실제로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교육감 13명 가운데 8명이 전교조 핵심 간부 출신이었고, 국회의원 출신 정치인들은 대부분 낙선했다. 이는 당시 ‘진보 교육감’ 프로젝트가 민주당계 정치세력보다 교육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형성됐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후 진보 교육감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지방 교육행정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최근 선거에서는 전직 국회의원, 교육부 장관 등 민주당계 정치인들이 민주진보교육감 후보군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단일화 과정 역시 전교조·교육운동 세력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민주당계 인사를 포괄하는 광범한 연합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노동자·교육운동 세력이 독자적으로 정치적 대표를 형성하기보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주로 민주당계)과의 연합 속에서 후보를 구성하고 선거에 대응하는 경향이 강화된 것이다. 그 결과 단일화의 기준은 급진적 교육개혁의 방향이나 내용이 아니라, 인지도와 본선 경쟁력, 중도 확장성으로 이동하고, 교육운동과 좌파 세력은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요구를 조정하거나 후순위로 미루는 압력을 받게 된다. 결국 이러한 구조는 진보 교육감 프로젝트의 급진성을 약화시키고, 교육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보다는 체제 내 개혁에 머무르는 경향을 강화시키며, 좌파와 교육운동의 독자적 정치 공간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크다.

단일화 작업에서 운동의 통제력이 약해지니, 후보 개인의 영향력(인지도)이 좌우하는 구조가 됐다. 그 결과 서울에서 정근식 후보가, 경기에서는 안민석 후보가 진보 단일 후보로 결정됐다. 물론 진보 교육감 후보 선정 과정에서 운동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014년 선거에서 경기 이재정과 광주 장휘국은 지역의 민주진보교육감 단일화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운동진영의 지원으로 당선됐지만, 당선되고 나면 운동의 통제를 벗어나기 쉽다는 점을 보여 줬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번 선거에서 인천의 도성훈 교육감이 단일화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각 지역별로 ‘민주진보교육감 후보’로 선정된 인물들을 살펴보면, 강삼영(강원), 이병도(충남), 김성근(충북), 조용식(울산), 송영기(경남), 고의숙(제주) 등 전교조나 교육운동가 출신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이들은 진보 교육감 하에서 교육청 관료, 교육의원, 교장 등을 지냈던 인물들이다. 이는 선거 전 최근까지 교육운동에 몸담았던 후보들이 주목받았던 초기 선거와의 차이점 중 하나인데, 진보 교육의 주류화(운동성의 약화)를 보여 주는 면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선거에는 전교조 내 상대적 좌파 그룹인 교찾사 출신의 활동가들이 여럿 입후보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교육운동이 약화된 탓에 기층 투쟁을 통해 교육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고 보는 것인지, 교육청을 활용해서 교육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더 커진 듯하다. 또한 이재명 정부와 전교조 출신의 최교진 교육부 장관, 국가교육위원회 등 교육개혁을 위해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라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진보 교육감 시대”가 남긴 교훈 – 진보 교육감에 의존할수록 기층의 투쟁이 약화되고, 기층의 투쟁이 약화되면 진보 교육감의 후퇴가 가속된다 – 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의 공약은 과거보다 더 학력·진로·미래교육 담론에 가까워져 있다. 강원의 강삼영은 “강한 학력, 빛나는 진로”를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울산의 조용식은 초등 저학년 “기초학력 100퍼센트 보장”을 공약했으며, 대전의 성광진과 충남의 이병도도 각각 기초학력 안전망과 안심지원망을 제시했다. 제주 고의숙은 “추락한 제주 학력”을 언급하며 ‘초개별화 맞춤교육’을 공약했고, 부산 김석준도 “진짜 학력 강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이는 보수 후보들이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학력 담론이 진보 후보들의 언어 속으로 상당히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진보 후보들이 지역인재·거점국립대·AI·미래교육 담론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충청권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 협력해 지역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안민석은 AI 맞춤형 독서체계와 AI 학습 시스템을 제시했고, 부산 김석준은 AI 기반 미래교육을 핵심 공약으로 삼았다. 이는 진보교육이 경쟁교육을 비판하는 저항 세력의 역할을 하기보다, 국가 주도의 지역경쟁력·인재양성·미래산업 담론과 점점 코드를 맞춰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보수 후보들이 복지·돌봄·안전 공약을 확대하면서 복지 공약만으로는 진보와 보수의 차별성이 약해졌다. 물론 진보 후보들이 보수 후보와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인권, 민주시민교육, 생태전환교육, 작은학교 살리기, 노동존중교육, 특권학교 비판 등에서 여전히 차이가 드러난다. 이번 선거에도 민주진보교육감후보들이 모여 입시 경쟁 교육 해소, 대학서열체제 철폐, 고교 서열화 해소 등 공동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선거 구도에서 진보 후보들의 차별성은 학생인권·민주시민교육 같은 일부 쟁점에 집중되고, 핵심 공약의 큰 틀은 학력·AI·진로·지역인재·미래교육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도 보수 진영은 진보 교육에 대한 반감을 조직하려 하고 있다. 서울의 보수 후보들은 지난 진보 교육감 체제를 “암흑기”로 규정했고, 여러 지역에서 보수 후보들은 학력저하, 교권 추락, 학생인권조례, 이념교육을 진보 교육의 실패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의 핵심 공약도 기초학력·평가 강화, (보수적 의미의) 교권 회복, 학생인권조례 폐지 또는 약화, AI·미래인재 양성, 인성교육 강화 등으로 수렴한다. 이는 단순히 보수 후보 개인들의 공약이 아니라, 2022년 이후 윤석열 정부와 국힘 주도의 지방의회, 보수 교육감하의 교육청이 추진해 온 교육의 보수적 재편과 맞물려 있다.

보수 후보들의 단일화는 지역마다 성공과 파행이 엇갈리지만, 그럼에도 보수 진영은 “진보교육 심판”이라는 공통 프레임을 중심으로 결집하려 한다. 따라서 선거 국면에서 우파의 비난에 맞서 진보 교육의 가치를 방어하고 진보 후보들이 의미 있는 공약으로 진보 염원 대중의 열망을 표현하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는 것은 기쁘고 좋은 일이다. 선거 결과가 (대중의 의식과 자신감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투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 당선이 자동으로 개혁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쟁이다.

그런데 전교조는 선거 때마다 투쟁은 뒷전으로 두고 정책협약이나 선거 공약화 등 선거에 ‘올인’한다. 교육감 선거뿐 아니라 총선이나 대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매년 선거에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투쟁은 소홀히 해 오고 있다. 그 결과 전교조의 투쟁과제는 쌓여만 갔고 제대로 해결되는 것은 별로 없다.

전교조가 온건 개혁주의 – 선거주의, 교육감 의존 전략, 교육개혁 입법(국회 대응) 중시, 투쟁보다 협상 중시 등 – 경향을 키운 것은 교육운동과 교육개혁에 해악적인 영향을 미쳤다.

진보 교육감의 우경화는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운동진영의 우경화와 맞물려 있다. 진보교육운동의 개혁주의가 강해지면서 (조직력이나 투쟁력의 약화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점점 후퇴해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현가능한 정책이나 단계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교육적 비전이나 대안을 무디게 만들었다.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장공모제 확대로, △입시폐지는 수능 자격고사화로, 다시 수능 절대평가로 △대학평준화는 국공립통합네트워크에서 급기야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요구가 후퇴되거나 뒤틀렸다. 진로교육, 고교학점제, 미래교육 등 정부 주도의 교육 변화 흐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나 급진적인 대안은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전교조의 경우, 기간제교사 정규직화에 반대하거나 학교비정규직과의 연대에 소홀히하는 등 부문주의가 강해지면서, 교육노동운동의 단결에 악영향을 주었다. 또한 유보통합이나 초등돌봄 등의 문제에서도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지할 만하지만) 계급적 요구보다는 부문적 요구를 앞세우는 등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데올로기적 후퇴와 부문주의의 강화는 교육노동운동 진영 내 이견을 확대하고 연대를 약화시켰다.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활성화하려면 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따라서 좌파들은 교육운동 내 급진적 이데올로기를 복원하고 계급적인 교육노동운동(학교노동자들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교육감 선거를 앞둔 이때, 그저 진보 교육감을 세우는 일에만 그치지 말고 진보 교육감과의 관계와 교육노동운동의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와 성찰이 필요하다.

교육개혁을 위해 전교조가 힘을 쏟아야 할 일은 진보 교육감 세우기나 진보 교육감과의 “거버넌스 구축”이 아니라 대중의 기대와 열망이 열어 주는 틈을 활용해 아래로부터 독립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흔히 ‘진보 교육감을 활용한 개혁’이 힘들게 투쟁을 조직하는 일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단기적인 성과가 있다 하더라도 우파의 공격에 맞서 그 성과를 유지·확대하는 힘도 결국엔 대중투쟁에 달려 있다. 따라서 전교조 지도부는 정부와의 협상이나 진보 교육감에 기대는 방식이 아니라 조합원 스스로가 조직하고 집단행동에 나서도록 고무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대중투쟁이 실질적인 개혁을 쟁취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문헌

  • 공현 2021, ‘진보 교육감 기획은 계속 운동일 수 있는가’, 〈오늘의 교육〉 60호
  • 김용일 2023, ‘교육감 권력 변동과 지역 교육정책의 변화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학연구〉 제29권 제4호
  • 김혜란 외 2022, ‘시·도 교육청 미래교육 정책에 대한 비판적 담론 분석’, 〈교육문화연구〉 제28권 3호
  • 사회진보연대 교사회원모임 2022, ‘진보교육감 12년 평가와 사회운동의 과제’, 〈사회진보연대〉 통권 제179호
  • 서정호 2022, ‘교육 소외의 시대, 진보 교육감 운동의 한계와 과제’, 〈오늘의 교육〉 제69호
  • 양희준 외 2022, ‘2022년 교육감 선거의 특징과 의미’, 〈교육정치학 연구〉 제29집 제3호
  • 염정수 2022, ‘막을 내리는 진보 교육감 시대,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의 교육〉 제71호
  • 유승민 2024,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활용한 교육감 당선자 선거 공약 분석: 2022년 교육감 선거를 중심으로, 〈교육행정학연구〉 제42권 제2호
  • 이을재 2022, ‘진보 교육감 12년, 성과와 한계’, 〈현장과광장〉 제7호
  • 이형빈 2014, ‘진보 교육감 4년은 무엇을 남겼는가’, 〈오늘의 교육〉 제20호
  • 정원석 2022,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의 경험’, 〈노동자연대〉 416호
  • 조장우 2022,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차악과 차선 사이’, 〈오늘의 교육〉 제69호

<노동자연대> 584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