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관측이 시작된 1백 36년 이래 가장 무더웠다는 올 여름, 아산의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공장 사수 투쟁을 하고 있다.
사측의 직장폐쇄와 용역경비 침탈 및 공권력 투입 시도에 맞서 50일 넘게 굳건히 공장을 사수하며 투쟁하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의 투지와 위용은 실로 대단하다. 투쟁이 있는 곳에 연대의 꽃이 핀다고, 수많은 노동자들과 연대 단체들이 이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농성장을 방문하고, 밤새 공장 정문 사수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 이들 연대 단체들과 노동자들이 보내 온 투쟁기금은 지금까지 4천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물, 쌀, 라면 등 식료품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 <벌떡교사들> 독자들도 지난 8월 세 차례에 걸쳐 2백만 원이 넘는 지지금을 모아 갑을오토텍지회에 전달했다.
갑을오토텍 투쟁에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의 핵심이 다 담겨 있다.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노동자들이 이전에 쟁취했던 성과들을 빼앗고,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노조를 깨는 것.
의미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과 같은 대기업에 납품할 부품을 생산하는 갑을오토텍은 지난 수년간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투자를 늘리며 성장해 왔다. 부품사이지만 글로벌 시장에 깊숙이 편입돼 치열한 자본간 경쟁에 노출돼 있다. 사측은 노동자들의 임금 등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자 했다. 그간 노조가 쟁취해 온 통상임금 확대와 주간연속 2교대제, 비정규직 없는 사업장 등이 사측에겐 눈엣가시였다.
사측은 2014년부터 ‘Q-P 전략’이라는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작성해 체계적인 노조 공격에 나섰다. 노동부, 검찰, 경찰은 이런 시나리오를 방조했다. 국가 기구들이 누구의 편인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2015년에 이 시나리오에 따라 전직 특전사 출신의 용역깡패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노조 파괴를 시도했지만 노동자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전 대표인 박효상은 검찰 구형보다 더 많은 10개월 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사측은 2016년 여름 휴가철을 노려 직장폐쇄를 강행하고 다시금 노조 파괴를 시도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공장 사수 투쟁으로 이에 맞서고 있다.
갑을오토텍 투쟁은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위기와 분열을 이용해 벌어졌다. 우병우 사퇴를 놓고 범여권이 분열해 있고, 박근혜 정부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레임덕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애초 많은 이들은 정부가 여름휴가 기간을 틈타 경찰 병력을 투입해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을 진압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 자신이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져 곳곳에서 저항에 직면해 있고, 그 속에서 갑을오토텍 투쟁이 연대의 초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갑을오토텍 투쟁은 경제 위기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싸울 수 있고, 싸울 힘도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특히 노동자들은 공장 사수 투쟁을 통해 공장과 생산의 주역이 누구인지를 보여 줬고, 연대와 지지를 모아냈다.
장기화
사측은 노동자들의 공장 사수 투쟁 때문에 지금까지 생산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노조에 단협 해지를 통보했다. 사측이 이렇게 공격을 지속하는 것은 숨 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투쟁이 장기화된 것은 금속노조와 갑을오토텍지회 지도부가 단시간 내 힘을 집중해 점거 파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보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면서 점거 파업의 효과를 반감시킨 탓이 큰 듯하다.
최근 갑을오토텍지회 지도부는 물품과 샘플 반출을 세 차례 허용하며 사측의 숨통을 트이게 해 줬다.
최근 갑을오토텍지회는 “갑을 창고가 불법 대체생산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발표했다. 2~3차 하청업체들에서 생산한 물량이 아산시 온양동에 있는 갑을오토텍 창고로 모여 현대·기아차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을 봉쇄해야 사측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금속노조 지도부도 갑을오토텍 공장에 ‘경찰 투입 시 연대 파업을 논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연대 파업보다 국회를 통한 해결책을 찾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국회 대응을 하면서도,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투쟁의 힘을 극대화해야 사측과 정치권 모두를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투쟁의 장기화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그러나 파업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면 금속노조 · 현대기아차 · 부품사 노동자들의 연대를 모아내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다. 금속노조 집행부도 실질적인 연대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